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한국 대중음악 명반 100 (문단 편집) ==== 반론 ==== 70년대 이전 음반들이 누락된 것은 70년대 이후의 대중음악이 그 전의 대중음악과 큰 격차가 있어서일 수 있다. 보통 서구권 해외 평론계에서도 [[빌 헤일리]]의 이 발매된 1955년부터 평론을 매기고, 그 이전의 스윙 재즈나 컨트리, 블루스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모던 팝이 빌 헤일리로부터 출발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한국에서도 1964년 [[신중현]]의 <빗속의 여인>을 기준으로 음악사가 변하기 때문에(그 흐름이 제대로 포텐이 터진 것은 70년대부터다) 그것을 기준으로 했을 가능성이 있다. 게다가 [[LP]]가 세상에서 처음 나오게 되는 시기가 1948년이고 한국에서 '''LP음반이 처음 제작되던 때가 1958년'''이다. 따라서 일각에서 제기할 수도 있는 [[일제강점기]] 혹은 [[광복]] 직후 작품은 왜 없냐는 비판은 전제부터가 유효하지 않다. 애초에 당시엔 '''정규음반이란 개념 자체가 없었으니 말이다'''. 2000년대 이후 음반은 왜 이리 보이지 않냐는 비판도 mp3의 대중화로 인해 [[싱글]]의 비중이 많아진 점을 간과한 것이다. 영화를 예로 들어보자면 100대 [[무성영화]]를 뽑는데 왜 21세기 작품은 없냐라는 지적과 비슷하다고 할만하다. 그리고 마라도나, 펠레의 영향력을 굳이 나서서 부정하려는 사람도 없고 이제는 꽤 과거가 되어버린 마이클 조던의 영향력을 애써 부정하려는 사람도 없다. 헌데 왠지 명반선에는 이런 사람들이 있는데, 그럴 바에야 차라리 2000년대 이후의 명반선 혹은 00년대의 명반선이라고 따로 명반선을 만들면 그만이다. 애써 새로운 태도나 시각을 꾸며서까지 부자연스럽게 어느 시대 이후의 음반을 부각시킬 이유가 없다. 더불어 앞의 트로트 부분에서와 마찬가지로, 60년대 가요계 역시 음반보다는 싱글 위주로 운영되어 음반 차원에서 보면 기존 곡을 재탕하거나 다른 가수의 곡을 커버해 주력으로 미는 1~2곡을 제외한 나머지 트랙을 채우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심지어 그런 커버곡 중에는 해외 유명 팝을 무단으로 커버/번안한 경우도 많았다.[* 목록에 오른 [[양희은 고운노래 모음]] 역시 이런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데, [[아침 이슬]]의 상징성이 워낙 강력하고 해외 포크 곡의 커버 역시 당시 포크 계의 동향을 알 수 있는 사료적인 가치가 있는 것과 별개로 10곡 중 7곡을 해외 팝 커버로 채운 해당 음반을 완성도 면에서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앨범 전곡을 자체적으로 작곡하고 가창해 음반 단위 음악의 시초가 된 [[김민기 1집]]의 가치가 더욱 부각되는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